Secret K:헨리에 관하여.

발목의 붓기는 어제보다 훨씬 가라앉아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붕대를 다시 감는다. 발등의 절반을 덮고 발목까지 전부 덮도록 단단히 당겨 감싸는 손놀림이 재빨랐다. 손에 익은 것이다. 이미 햇수로 십오 년 차. 그림을 제외하면 손재주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이라도 이 정도 되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하하, 처음에는 이런 것 하나도 미덥지 못하다고 당신에게 잔소리를 들었었는데.

… 발 이리 다오. 아이린.

그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가도 하나도 흐려지질 않는다. 아이린은 여전히 그녀의 발목을 부드럽게 당기던 단단한 손가락과 내 이름을 언제나 한숨처럼 부르던 조금 낮은 목소리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발등에서부터 시작해 발목까지 단단히 당기며 8자로 감싸던 손길을 떠올리며 아이린은 붕대를 마저 감았다. 매듭을 짓는 것까지 그가 가르친 그대로였다.

오늘로 미뤄진 낙하 훈련은 제법 전통이 깊은 킹스맨의 훈련 방식이다. 십오 년 전에도 후보생들은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물론 자신도 그 무리 중에 있었다. 자네 중 한 명에게 낙하산이 없다면 어떡할 텐가. 그 한 마디에 패닉에 질린 일곱 명의 후보생 중에.

일곱은 짝이 맞지 않는다. 원을 만들자는 건 아마 딜런의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한 명씩 낙하산을 펼치고 원에서 사라질 때마다 각자의 등 뒤에 낙하산이 없을 확률이 높아졌다. 셋 중 하나가 결국 낙하산을 펼치고 자신의 확률이 33.3%에서 50%로 높아졌을 때 아이린은….

그를 봤다. 주마등처럼. 일곱 살 가족을 납치한 테러리스트 집단을 단신으로 제압하고, 벽장에 갇혀 기절한 그녀를 안아 들었던 그를. 십오 년을 평범한 정치가 윌슨으로 위장한 채 제 집안을 왕래했던 그를. 스물 둘, 대학을 일찍 마친 자신이 킹스맨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잊은 게 아니었냐며 슬쩍 인상을 찌푸리던 그를. 후보생이 모인 방 앞에서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주고 등을 떠밀던 그를.

내 코드네임은 모드레드다. 네가 케이에 선발된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겠지.

그러다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위험고도를 알리는 경보음이 귓가에 어지럽게 울리고 완전히 패닉에 빠진 다른 후보생 엘리자벳은 낙하산 버튼을 당길 여력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아이린은 이를 악물고 엘리자벳을 완전히 끌어안은 채 그녀의 낙하산 버튼을 대신 당겼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모드레드로 불러보기 전에는.

다행히 낙하산은 펴지고 엘리자벳도 자신도 죽지는 않았지만, 고도가 너무 낮아 낙하산도 충격을 완전히 줄여주지 못했다. 착지할 때 자세가 어설펐던 탓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발목을 접질렀다. 그러나 부상당한 곳이 있냐는 멀린의 물음엔 고개를 저었다. 시험은 막바지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끝나는데 약점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당신은 그것까지도 다 알고 있었지.

낙하훈련 이후로 절뚝거린 걸 모를 줄 알았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는데 어리석긴.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그의 혀 차는 소리는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 가벼운 소리는 스물 둘 훈련성적이 우수한 후보생 아이린을 도로 일곱 살의 무력한 꼬맹이로 만들었다. 한번도 자신의 킹스맨 지원을 기꺼워한 적이 없는 그가 그렇게 혀를 찰 때마다, 자신이 없어졌다. 내키지 않아하는 그에게 떼를 써서 추천을 받아낸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헨리. 당신은 그것마저도 아마 다 알았을 것이다.

…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어차피 이후로는 내가 널 걱정할 일도 없을 거다. 아이린. 

스물 두살까지 내게 당신은 오로지 미스터 윌슨이었고, 케이로 선발된 뒤로는 항상 모드레드였다. 당신을 진짜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모드레드의 코드명이 타인에게 상속된 후 부터다.

한 번이라도 당신이 죽기 전, 헨리라고 불러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나는 지금에서야 그게 후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