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형제:별 헤는 밤(현우전력60분)

형님, 여기 중앙은 별이 아주 곱습니다. 

가을밤, 찬 기운이 등골을 훑고 지나가지만, 하늘 가득 쏟아질 것처럼 빛나는 별 무리를 보고 있으면 어쩜 하나도 춥지가 않아요. 모두 깊은 잠에 빠지고 달도 조금 기울 때, 문득 잠이 깨면 저는 이렇게 나와 마루에 걸터앉은 채로 별을 세곤 합니다. 그러면 곧 악몽으로 인한 식은땀도 식고, 눈꺼풀도 금세 도로 무거워져요. 아 참, 그러고보니 잠이 오지 않을 때 별을 세는 건 형님이 가르쳐준 방법이었죠. 괜히 아는 체를 할 뻔 했네요. 백호 공자인지, 청룡 공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너방에서는 끊임없이 코를 골아대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그들과 같은 방이었다면 저는 악몽도 모자라 코 고는 소리에도 시달렸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에요. 주작 공자는 저런 잠버릇은 없거든요. 늦게까지 빛나는 액정을 들여다보는게 신경에 좀 거슬리긴 하지만.

중앙의 별은 온 밤이 다 가도록 세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아주 많습니다. 형님은 별을 좋아하셨죠. 당신과 여기서 함께 별을 세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저는 아직도 열두어 살, 형님이 제 손을 붙들고 어두운 후원을 거닐던 밤들이 기억납니다. 본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언제나 칠흙같았는데 형님은 그 어둠 속에서도 간신히 반짝이는 별 몇 개를 찾아내서 제게 가리켜 보여주곤 하셨었죠. 솔직히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형님이 손 끝으로 가리켜보인 방향에서 제가 별을 진짜로 발견한 횟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직 어렸던 제 눈엔 형님이 가리킨 자리에도 여전히 어둠밖에 보이질 않았거요. 그럼에도 제가 저기 보이냐고, 예쁘지 않냐는 형님의 물음에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던 건, 제가 다른 곳에서 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리킨 당신의 손끝에서가 아니라 저를 돌아보며 둥글게 휘어진 검은 눈동자 속에서.

깊은 밤은 현무의 시간이라고 하죠. 어쩌면 현무가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에 어둠뿐인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온 땅에서 현무의 기운이 가장 선명하게 드리워진 땅이니, 아무리 밝은 별이라도 차마 그 어둠을 투과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형님은 그 어둔 현무의 밤에도 희미하게 빛나는 별을 찾는 사람이었죠. 제게는 그런 당신이 별이었는데. 언제나 무거운 어둠에 쌓인 집안에 등에 신수를 지고 태어난 죄로 평생을 갇혀살아야 했어도 견딜 수 있었던 건 그 때 제 곁에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 짙은 밤 가운데도 멀리서 반짝이는 당신의 존재가 저에겐 말할 수 없는 위안이었으니까. 늘 버겁고 숨막혔던 현무의 증표도, 뼈를 깎는 것처럼 혹독한 수련도. 다 형님을, 형님의 자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도 힘겹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서슴치 않을만큼 저는 당신의 별빛에 눈멀어있었어요. 너무 맹목적이어서 정말로 당신을 위하는 게 무엇이었는지도 모를만큼.

형님. 언젠가 저와 우연히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하고 제게 물었던 적이 있죠.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제 소원은 오래전부터 단 하나였습니다. 당신이 제게 그렇듯 저도 당신에게 위안에 되는 별이 될 수 있기를. 알아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현무의 시간은 밤. 저는 처음부터 어둠을 밝힐 별빛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바로 당신의 희미한 빛을 삼키고 꺼트린 그 밤이었어요. 그걸 왜 형님을 잃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는지 스스로의 멍청함이 억울할 지경입니다. 미리 알았다면 당신을 그렇게 제 옆에 묶어놓으려고 애쓰지 않았을텐데. 그저 땅 위에서 하늘의 별을 헤듯 멀리서 우러러 지켜보기만 했을 텐데. 만약 그랬다면 당신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겠죠.

형님, 저는 여전히 절박하게 현무비술을 수련 중입니다. 당신을 대신해 가문이 내세운 새로운 가주 후보따위를 위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당신이 아닌 그 누구도 저의 가주일 수는 없는 걸요. 형님마저 질리게 만들만큼 지저분하고 난잡한 집안의 일에 더 이상 간섭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현무를 제 몸에 강림시켜 현무문을 열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 현무는 죽음을 관장하고 죽은 사람의 땅은 하늘나라에 가까우니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가 재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아직도 당신이 그립고 여전히 무척 보고싶습니다.

부끄러운 말들이 전부 찬 바람에 씻겨나갈 것 같은 가을밤, 별이 무척 곱습니다.
형님, 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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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전력 60분 참여했던 글 백업:D 급하게 달리느라 묘사 다 제외하고 현우 독백처리 했는데 막판엔 모바일로 쓰느라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문장이 계속 맘에 안들었는데 늦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올려서 백업하면서 조금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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