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현오:자기희생


Lucy Ost. Damon Albarn - Sister 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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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빈 속을 꾹 누르면서 가늘게 떨리는 눈을 꾹 감았다. 시야가 사라지니 다른 감각이 날을 세운 검처럼 더 선명해진다. 가령 지금 당숙뻘인 남자의 뇌를 더듬고 있는 그의 주술력같은 감각. 현오의 주술은 특히 현무와 몹시 닮아있는 편이었다. 은밀하고 어두운 죽음처럼 소리도 없이 사람을 고장낸다. 안개처럼 퍼진 주술력이 사람의 호흡을 타고 들어가 뇌를 휘젓고 마음을 조각내 결국은 육신을 끈 떨어진 인형 꼴로 처박곤 했다. 현오는 그런 식의 섬세한 파괴에 무척 능한 편이었다. 주(呪)가 맺히고 엉겨 나타나는 흐릿한 안개는 그 자체로 수족이 된다. 그것을 어떻게 휘둘러, 또 어디를 건드려야 하는지 현오는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할 줄 안다는 것과 하길 좋아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였을 뿐이다.

커헉, 사, 살려줘.

한 때는 가문의 공경하던 어른이었던 중년의 남자는 주저앉아 뒤로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며 현오에게 쉴 새 없이 애원했다. 꼴사납고 흉했지만 동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호불호와 별개로 문중에서 자주 마주쳐 익숙한 사람의 정신을 주무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현오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차라리 물리적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헤집는 일이 그나마 덜 역겨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주술이 섬세하고 예민한 만큼, 그가 느끼는 감각도 선명했다. 공포와 공황장애를 일으켜 사람을 굴종시키려고 남의 편도체를 억지로 휘저을 때, 현오는 제 공포 중추 역시 사정없이 자극당하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사람의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더니 현오의 주술이 꼭 그랬다. 가문 내에서도 그 세심한 주술력을 따를 자가 손에 꼽기 어렵건만, 동시에 역반응처럼 돌아오는 역겨움이 너무 커 외려 독이 되는 것이다.

이 힘은 결국 제 정신까지 좀먹게 될 것이다. 처음 사람의 정신을 으깨고, 뒤뜰에 뒤집어진 속을 전부 게워내야 했던 이후로 현오는 그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순간 감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속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신물을 억누르면서까지 주술을 마치 집념처럼 휘두르고 있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현우. 그 애가 직접 손을 더럽히는 걸 보느니, 차라리.

귓가에 지겹게 울리던 굵고 쉰 비명소리가 조금씩 가래끓는 소리로 변해 잦아들다가 결국은 뚝 끊겼다. 현오는 직감적으로 그가 죽었음을 알아챘다. 공격할 대상을 잃은 안개가 천천히 허공속으로 흩어졌다. 현오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속은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처럼 메스꺼웠고 긴장감에 계속 힘을 줬던 눈가는 여전히 파들거렸지만 감고있던 눈을 뜬 현오는 제 친족의 시체를 보면서 텅 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 거봐요, 아버지. 제가 할 수 있어요. 굳이 현우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제가, 이렇게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가장 먼저 드는 감각이 죄책감도, 자괴감도, 후회도 아닌 안도라니. 제 안의 어딘가 이미 고장난 게 아닐까, 현오는 잠시 의심했다가 곧 그런 의심마저 무의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현우는 이미 자신때문에 망가졌다. 현오의 옷자락을 붙들고 방긋방긋 웃던 아이가 자신을 차기 가주로 세우겠다고 하얀 손에 거리낌 없이 피를 묻혔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이 현우를 지키기 위해 부서질 차례였다. 현오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자기희생의 보람은 채 일각을 못 이어졌다. 현우를 대적하는 무리 중 수장 격이었던 사내를 죽이는 데 너무 몰두했던 나머지 현오는 그를 지키고 있던 종복들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걸 늦게 알아챘다. 생존자가 스스로의 피웅덩이에 엎드러진 꼴로도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핏물로 저주문을 쓰고 있다는 것 역시.

뒷목이 선뜩한 감각에 뒤늦게 현오는 몸을 돌렸으나 모든 상황은 끝나있었다. 현우가 거기에 주술문을 그리던 손을 짓밟은 채로 서 있었다. 행선지를 이른 적도 없건만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질문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현우가 소매를 걷고, 검게 물든 손을 아직 연명한 잔당에게 뻗고 있었다. 안 돼. 현오는 부지불식간 입을 열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정상이 아닌 몸이 의지를 배반하고 늘어졌다. 현오는 거의 속삭이고 있었다. 현우야, 제발, 그러지 마. 현우는 신음처럼 작은 현오의 목소리에도 손을 멈춘다.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형님. 형님을 저주하려고 한 자입니다. 어찌 살리라 하십니까.
아냐, 살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할게. 내가 하게 해줘.
형님, 형님 주술력의 부작용은 저도 압니다. 이미 저 자를 죽이느라 무리하시지 않았습니까? 벌써 기력이 많이 쇠하신 듯 합니다. 제가 처리하고 함께 돌아가 쉬도록 해요.

그 말이 맞았다. 현오는 점점 더 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시야가 천천히 흐려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래는 것처럼 다정한 목소리에 그냥 기댈 수는 없었다. 무엇을 위해 그 역겨움과 그 위험을 무릅썼는데, 이렇게 또 다시 현우가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게 버려둘 수 는 없었다. 현오는 애원을 쥐어짰다. 

현우야, 괜찮아. 난 다 견딜 수 있어, 널, 너를 지킬 수만 있다면 나는….

현우는 그 애원에 조금 가늘게 웃었던 것 같다. 어울리지 않게 깨끗한 미소를 단 채로 현우가 검은 손을 뻗어 발 밑 남자의 목을 쥐었고, 곧 부러트렸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답지 않게도 경쾌했는데 그럼에도 현우의 대답이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다.

저도 그렇습니다. 차기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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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슷을 리퀘하셨는데 중2를 써온 것 같아 면목없습니다 아랄님(mm)
노래 가사는 영어라 잘 모르겠고 찾아봐도 잘 없어서 분위기만 빌려왔어요!
근데 왜 유투브 링크가 안먹히는지 모르겠네요 ㅠㅠ 일단 노래 제목만 써서 업로드합니다.

흑흑 리퀘 참여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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