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컴퍼니:정복

도림의 손은 모난 곳도 두드러지는 곳도 없이 평범하다. 길쭉하게 쭉 뻗은 손가락은 적당히 마르고 단단했다. 가늘긴 했지만 어린 여자애처럼 하얗거나 말랑하진 않았고, 오른손 중지의 왼쪽엔 자주 쥐는 펜의 모양을 따라 굳은살이 배겨있다. 손톱은 늘 짧고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딱히 네일 관리를 받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보나 30대의 직장인이 가질 법한 평범한 손.

그러나 석영은 이 손이 또 얼마나 야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바로 도림의 그런 갭이 이따금씩 석영을 안달나게 하고, 참을 수 없이 만드는 것이다. 손금이 뚜렷하게 뻗어있는 손바닥을 장난처럼 꾹꾹 매만지고 눌러보다 보면, 석영은 불가항력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저 뻗은 실금 사이에 땀이 고이고, 쾌감을 참지 못한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저 뭉뚝한 손톱이 손바닥 위에 자국을 남기던 광경을. 펜이나 쥐고 자판이나 두드리던 손가락이 매끈한 넥타이 매듭 사이를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와 풀어내리던 모습을. 세상에 딱 매달릴 곳이 그 뿐인 것처럼 어깨나 팔뚝을 붙들고 매달리던 것과 손등에 힘줄이 두드러질 정도로 강하게 침대시트를 움켜쥐던 것까지.

아랫배가 당기고, 입안에 군침이 도는 상상들. 석영은 충동이 자신을 이끌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와 있다보면 석영은 자주 그렇게 됐다. 참을성도 버릇도 없는 심술궂은 어린애처럼. 그리고 어린애는 원래 전부 남탓을 하는 법이다.

하하, 뭐하는 거에요. 차 대리.
과장님 손이 야해서요.

뻗은 손바닥 위에 마른 입술을 가볍게 갖다댔을 때는 그는 조금 민망한 얼굴로 쿡쿡 웃기만 했다. 혀를 내밀어 핥기 시작하자 그제야 얼굴에 번져있던 미소가 빠르게 가셨다. 석영은 길쭉한 손가락 사이로 그를 훔쳐보았다. 매끈한 눈매부터 열이 번지며 일그러지는 모습이 석영의 안에 불을 당겼다. 자신이 지핀 감각에 그의 단정함이 함락당하 그 순간을 석영은 사랑했다.

자, 어서 제게 항복해요.

말은 소리로 맺히진 않았다. 그러기엔 그의 지문과 손금을 낱낱이 더듬고 어루만지느라 혀가 너무 바빴다. 그러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면서 석영은 확신했다. 틀림없이 전해졌을 것이다.

사실 대답도 이미 들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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