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현우 : 카그라스 증후군

017. 카그라스 증후군 

-망상적 동일시(Delusional misidentification syndrome)의 하나로써 자신의 친구나 배우자 또는 주변인들이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되었다고 믿는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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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십년 전, 나는 현우를 처음 보았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등에 거북이와 뱀을 지고 태어나는 아이는 탯줄을 끊자마자 격리시키는 것이 불문율. 사신비술을 익힐 만큼 자라기 전까지는 가주와 그 심복을 제외하면 후계자의 얼굴을 아무도 대면할 수 없다. 그건 현을 성으로 삼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처럼 의식 속에 공유하고 있는 금기 중 하나였다. 열여덟의 자신에게는 그걸 숨막히다는 생각은 있어도 직접 행동으로 거스를 정도의 배짱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우연에게 있다. 원래대로라면 자격도, 권한도, 기회도 없었을 내가 현우를 마주친 일에 대한 책임. 

본가의 후원 구석엔 사람들이 찾지 않는 정자가 있다. 안개처럼 짙고 무거운 가문의 그늘에서 아주 조금 비껴나있는 그 정자는 내 유일한 피난처였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주무르고 지배하고 휘두르는 가문의 모습에서 역겨움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도망쳤다. 도드라지기 시작한 목젖 아래까지 울컥 올라오는 신물을 겨우 숨기기 위해서다. 가문의 영달을 지상과제로 삼도록 교육받고, 맹목적으로 가문을 위해 헌신하는 어른들을 롤모델로 여기도록 강요당하며, 오히려 나는 본가의 잔학함과 끝없는 탐욕에 대해 배웠다. 가장 끔찍한 부분은 환멸감마저 감춰야한다는 점이다. 현무의 가풍은 한번도 거역을 용납한 적이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괴감을 자부심으로 포장하면서, 깊은 자기혐오로 몸부림쳤다.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원의 정자는 꼭 그럴 때, 내가 향하는 곳이었다.


처음 
현우를 마주친 그 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문 어른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후원의 사각지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 그 사실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정자로 달려갔다. 거기에서야 간신히 숨이 트였다. 어디서도 함부로 내쉬지 못하는 깊은 한숨이 그제야 새어나온다. 피곤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면서 어깨를 늘어트렸을 때였다. 등 뒤에서 풀밟는 작은 인기척이 났다. 긴장으로 몸을 굳히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거기에 여섯살의 현우가 서있었다.


죽은 눈을 한 어린 아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음울한 눈빛에, 첫눈에 알아챘다. 어떻게 격리구역을 빠져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북망산의 현무를 등에 짊어진 후계자가 틀림없다는 걸. 금기대로라면 말을 섞지도, 오래 마주하지도 말고 가문의 어른에게 아뢰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배운대로 행하는 대신, 충동적으로 말을 붙였다. 머리가 엉망이네. 어딘지 모를 격리구역에서 후원으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개구멍이라도 지났건지 
현우의 땋은 머리는 가지에 걸려 잔뜩 헝크러진 상태였다. 수풀과 잎사귀가 제멋대로 꽂혀있는 작은 정수리를 흘끗 넘겨보면서 나는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땋아줄까?


왜 그랬을까. 나는 지금까지도 종종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그 때, 나를 움직인 충동은 무엇이었을까. 그 깊은 정자에 아무도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준 만용이었던 걸까. 아니면 현무의 증표를 천형처럼 타고나 죽을 때까지 가문을 벗어날 수 없는 후계자에 대한 얄팍한 동정심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혼자 멋대로 갖다붙인 동질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여섯 살의 현우를 모른 척 보낼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검은 눈동자를 긴장한 채 바라보면서 그 날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중이었다. 
현우는 한참동안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가 대답 대신 자박자박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등돌린 채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이 무언의 허락이란 걸 알았다. 빗이 없었으므로 조심조심 걸려있는 잎파리 따위를 손수 떼어내면서 손가락으로 엉킨 것을 천천히 헤집고 풀어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 서툴고 느린 손길을 한 마디 불평없이 받던 현우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머리를 거의 끝까지 다 땋아내렸을 때의 일이었다. 등 뒤의 나를 돌아보며 현우는 작은 입술을 달싹였다.

…ㅎ, 형. 이름.

그게 질문이었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아챘다. 사람과 격리된 채로 자란 만큼 대화에 서툴 수 있다는 점 역시 한발 늦게 떠올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 빛이 꺼진 것처럼 어두운 동공이 처음으로 안쓰러워졌다. 나는 머리에서 솎아냈던 것 중 들꽃이 매달린 풀줄기 하나를 주워 가지런해진 현우의 귓가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다정한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현오라고 해. 네가 현우지?

현우는 처음으로 얼굴 위로 표정을 드러냈다.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뺨을 조금 붉히면서 다시 몸을 돌렸다. 그 장면은 음각한 것처럼 오랫동안 내 기억에 새겨져있었다. 본가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전부 자기혐오와 자괴감으로 온통 시린 겨울이었다면, 그 날은 북풍 속 한줌 볕처럼 눈물겹고 따뜻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 난색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위로받았다.


그래서 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설마, 그 만남을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

작은 후원의 정자에서 현우와 마주치는 기적적인 일은 두 번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유학을 떠났다. 그게 내가 겨우 찾아낸 도피책이었다. 가문에는 아직 어린 후계자 대신 현 가주가 선택한 차기가주까지 번듯하게 있었기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방계의 혈손이 본가를 떠나는 일에 대해선 어른들 역시 너그러웠다. 국제변호사를 지망한다는 말에 오히려 반색하기도 했다. 가문의 사업을 확장해가는 것에 있어 한 명쯤 국제법에 능통한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완벽히 벗어난다는 기대조차 품어본 적 없었다. 나는 본가를 떠나 완전히 다른 곳, 다른 집에서 숨쉴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만족했다. 수속은 척척 처리되었고, 나는 어렵지 않게 뉴욕행 편도 티켓을 손에 쥐었다. 떠나면서 현무관에 고립된 현우가 생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후계자를 가문 밖으로 빼돌리는 일이 내 주제에는 벅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안쓰럽고, 불쌍했다. 현우의 처지에 연민과 동정 역시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현우를 나 자신보다 우선할 수는 없었다.
나는 냉정한 판단 끝에 현우를 포기했다. 미련을 자르고 혼자 떠났다. 어쩌면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날, 뉴욕에 둔 맨션에 둔 자동응답기에 짧은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다. 메세지는 간결했다. 본가로 돌아와라. 현익이 죽었고, 후계자가 너를 선택했다. 단 세 마디에 내 인생이 도로 진창에 쳐박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지만, 애초부터 가문의 명령은 내 이해를 필요로 했던 적이 없었다. 메세지를 받고 사흘 뒤에 비행기 티켓을 받았다. 서울로 향하는, 편도였다.

열시간 넘게 밤하늘을 날아가는 동안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마치 혼자 떠난 일의 죗값이 이제야 돌아와 나를 후려치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현익은 현 가주가 세웠던 차기 가주였다. 그런 그가 돌연 죽고, 기다린 것처럼 내 앞으로 자리가 돌아왔다고?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몹시 울렁거렸다. 어떤 끔찍한 예감이, 혹은 난폭한 기시감이 나를 내내 괴롭혔다.

기다렸습니다. 형님.

꼭 십년만에 본 후계자는 기억에 남은 모습과 전혀 달랐다. 훌쩍 큰 키와 또렷하게 자리잡은 이목구비나 전처럼 더듬거리지 않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대화 등도 그랬지만, 뭔가 그 이전에 근본적인 위화감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마중나와있던 그가 기억과 똑같이 눈을 크게 떴다가 뺨을 조금 붉히면서 인사를 건넨다. 정말 보고싶었요. 꼭 십년이 지났으니 이제 열여섯, 아직 소년티를 다 벗지 못한 앳된 얼굴을 뜯어보면 처음 마주쳤을 때의 모습이 언뜻언뜻 엿보였다. 나를 인도하며 앞장서서 걸을 때 등 뒤로 단정하게 땋아 늘어진 머리도 어릴 때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가 기억에 남은 것과 비슷하게 웃고 이야기할 때마다 드는 감정은 오래된 추억에서 비롯하는 애틋함이 아니라 낯설고 서늘한 기분 뿐이다. 딱 한번 마주쳤던 나를 친형처럼 따르고 친근하게 굴려고 애쓰는 후계자와는 다르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속으로 삼켰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널찍한 내실의 다탁에 후계자와 마주앉게 되자마자 이해할 수 없던 부분들을 질문했다. 첫번째는 물론, 전 차기 가주 현익의 죽음이다.

후계자는 질문을 듣자마자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가짜 차기 가주에 대한 말씀이시군요.
가짜라니.
제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정당한 차기 가주일 수 있겠습니까?

냉소적인 말투에 어쩐지 나까지 움츠러들게 된다. 후계자는 그런 자신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차기가주를 지목하는 것은 현무 후계자의 일입니다. 그런데 현 가주가 제 어린 나이를 핑계삼아 주제넘은 짓을 벌렸더군요.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 물러날 것을 명령했건만 오히려 항명하고 저를 공격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

단죄하였습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는 조금의 감정도 없었다. 그러니까 죄책감이나 거리낌, 불편하고 언짢은 기분 등, 보통 사람의 죽음을 대할 때 어쩔 수 없이 나타나게 되는 찌꺼기같은 감정들이 전혀 묻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의미를 한템포 뒤늦게 이해했다. 현익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한 것이다.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후계자는 이제 나를 흘끔거리면서 조금 뿌듯한 어조로 말을 잇고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그랬어요. 처음, 제게 이름을 알려주셨을 때부터, 저는 당신만이 제 가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애완동물 같은 모습이었다.

깨닫는 순간 더 이상 표정을 갈무리할 수가 없어졌다. 꼭 가문의 부조리를 알아챘을 때처럼 속에서 순식간에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삽시간에 찌푸려진 얼굴이 두드러졌는지 맞은 편에 앉아있던 후계자가 허둥지둥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뺨을 매만진다. 왜 그러십니까, 차기 가주. 안색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걱정과 다정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와 따뜻한 손길에 나는 오히려 소름이 쭉 돋았다.

한 때, 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가문에 묶인 현우의 처지를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동정하고 연민하다 못해 나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환멸감을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 믿기도 했다. 하지만 눈 앞에 순진하고 깨끗한 얼굴로 나를 데려오기 위해 자리를 '청소'해 두었다고 말하는 괴물은, 오히려 내가 아닌 내가 혐오한 가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만 같지 않나. 내 뺨을 덮고 있는 손에서 진하게 피비린내가 풍겨 점점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후계자의 손을 탁 쳐냈다. 결국 아까부터 가슴 언저리에 맴돌던 서늘한 위화감이 질문이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너, 대체 누구야.

거절당한 손을 물끄러미 보던 그가 상처입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고개를 떨군다. 그럼에도 동정심보다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보고있는 이게, 이 괴물이 정말 현우라고? 끔찍한 본가에서의 시간 중 유일하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했던 따뜻한 색의 추억마저 이제는 빛을 잃었다. 나는 한 순간도 더 낯선 그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려는데 그가 다급하게 내 손을 붙들어왔다. 잡고 늘어진 손바닥에 절박하게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춘다.

제발, 저를 또 버리지 마세요. 형님.

처절하고 기형적인 집착과 애원이 뿌리처럼 기어올라와 발걸음을 옭아맨다.
나는 다만 파들거리는 눈꺼풀을 질끈 눌러감았다. 깨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악몽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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