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SHOP:Training

손에 든 양산을 빙글 돌렸다. 흰 천 사이로 투과해 쏟아지는 빛이 그래도 눈이 부셨다. 그만큼 쨍한 볕이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면 열에 끓는 시멘트와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피냄새도 함께. 로지는 그게 아마도 생존의 냄새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를 치열하게 불태워야 살 수 있는 날벌레같은 삶에서만 맡아지는 것. 로지는 한번 더 깊게 숨을 들이쉰다. 녹은 초콜릿, 부드럽게 한 스푼 뜬 크림뷜레, 하얗게 흩뿌린 슈가파우더처럼 단 냄새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탐이 나.

… 너무 아프게는 하지 말아요. 그러다 죽어버리면 어떡해.

작은 입술을 슬쩍 달싹이자 학대 행위를 가하던 손길들이 조금 느슨해졌다. 잘 훈련된 용병들은 민들레 홑씨처럼 갸날픈 목소리도 놓치는 법이 없다.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당연하지. 섬겨야 할 주인의 목소리인 걸. 그걸 구별하지 못하는 개에겐 가치가 없다. 그러니 말하자면 로지는 지금 그녀의 새 번견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중이었다.

뭐, 커다랗고 쌔까만 짐승은 개보다는 고양이에 가까웠지만….

한번 더 빙글 양산을 돌리며 로지는 매질에 꿈틀거리는 검은 근육을 물끄러미 보았다. 저 절박한 짐승을 로지는 투견장에서 발견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생의지. 아. 
눈을 가늘게 내리깔고 가벼운 한숨을 내쉬자 양산을 뚫고 흩어진 빛이 파들 떨리는 속눈썹 위로 부서져내린다. 로지는 그 순간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졌다. 부싯돌이 힘껏 맞부딪힐 때 이는 불꽃처럼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로지가 가지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로지에게로 와야하니까.

그만, 나와요. 짤막한 제지에 힘껏 폭력을 가하던 너댓의 무리가 재깍 물러선다. 벌어진 틈 사이를 로지는 하얀 메리제인 슈즈를 신은 발로 자박자박 걸어 밟았다. 구둣발에 피 엉긴 모래가 부서지고 뭉개졌지만 로지의 구두코는 여전히 새하얬다. 지저분하고 검은 것은 로지가 딛고 있는 땅과 그 뿐. 제 피와 땀이 고인 흙바닥을 두꺼운 수갑에 묶인 두 손으로 겨우 짚은 채 체중을 지탱하고 있는 그 모습에선 처음의 격렬한 반항도 이젠 찾아볼 수 없었다. 로지는 문득 그게 가엽다고 느꼈다.

내 발에 입맞춰요. 그거면 돼요.

그래서 자비로워지기로 했다. 열렬한 것,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 어쩔 수 없었다. 로지는 그 투견장에서 이미 첫눈에 이 검고 커다란 불꽃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러니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겠어. 더 이상 흠집내는 건 로지도 원하지 않았다. 이 매질의 목적은 처음부터 파괴가 아니라 길들이는 데 있었으니까 그가 얌전히 순종하기만 한다면….

생각은 밑바닥에서 긁어나온 것같은 쇳소리 섞인 으르렁거림에 뚝 동강났다. 로지는 무심코 양산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준다. 거기에 섞인 적의는 수인이 아니더라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 내가, 역겨운 인간 따위의 말을, 들을 것 같나?

그 말 잇기도 버거워 헐떡이면서도 로지를 향해 드러낸 이를 감출 줄 모른다. 로지는 수인의 언어는 알지 못했다. 종이 주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지, 주인이 종의 말을 이해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

그러나 키스를 권한 구두코에 피섞인 침을 뱉는 행위를 달리 오해할 수도 없었다. 무례에 대한 합당한 체벌을 가하고자 물러섰던 무리가 다가오려는 것을 로지는 가볍게 손을 내저어 제지했다. 그리곤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제야 눈높이가 좀 맞았다. 정작 마주할 시선은 없고 눈꺼풀은 굳게 덮여있었지만 방향은 어긋나지 않았다. 로지는 그 감긴 눈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없네요. 어리석어 보이진 않았는데….

진심이었다. 그가 아무리 반항한들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로지는 그를 샀고, 소유했다. 그의 주인은 로지가 죽을 때까지 로지 뿐일 것이다. 게다가 로지는 관대한 주인이었다. 제대로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시인하기만 한다면, 로지는 투기장에서 그가 받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선사할 수 있었다. 명백하게 그의 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는 오직 로지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고통을 감수하고 폭력을 감내하면서 고집을 피운다고?

아니면, 제가 당신을 오해했나요? 실은….

살고 싶지 않은 거였어요? 그렇게 물으려던 질문을 로지는 도로 삼켰다. 풀썩 무릎 위로 묵직하게 쏟아진 하중 때문이었다. 깨끗하고 티 없던 원피스 위에 그의 털에 엉겨붙어있던 피땀이 얼룩졌다. 로지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주인의 옷을 더럽힌 것도 혼나야 하는 건데. …이건 다음에 교육시켜야 할 모양이었다. 어차피 쉽게 길들일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탐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곤란하네요, …곤란해. 응. 정말.

로지는 짧게 속으로 되뇌이며 잠자코 부드럽게 기절한 그의 검은 털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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