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my nymph.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길과 연기가 자동차를 감싼다. 제법 안전한 거리까지 떨어져있는데도 벤자민은 코 끝에 와닿는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눈 아릴 정도로 일렁이는 불꽃을 물끄러미 응시하다 시선을 돌린다. 그에게는 동행이 있었다. 열다섯 작고 어린 금발의 … 님프. 간지럽게 뺨에 닿는 시선을 느꼈는지 레이먼드가 돌아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명치 정도에 뺨을 문지르며 아양을 떤다. 벤자민은 그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만 느리게 쓰다듬었다. 


…나 이제 자유에요? 


조금 벅차게 들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뒷목으로 살살 내려간다. 손가락 위에 간지럽게 흩어지는 금발을 부드럽게 헤집으면서 벤자민은 다시 불꽃을 곁눈질한다. 경매 마지막날, 레이먼드는 소년합창단을 지휘하는 유명한 오스트리아 계 지휘자에게 낙찰받았다. 지휘자와 레이먼드는 경매가 열렸던 섬에서 육지까지는 배로, 오스트리아까지는 비행기로, 공항에서 자택까지는 자가용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저기서 제 주인과 함께 불타고 있는 것 말이다. 금발과 나이, 키 외에는 레이먼드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소년의 시신이 트렁크에서 발견될 테고, 교회에서 장례를 치뤄야하는 유족들은 남창을 사서 귀환하다 죽은 지휘자의 죽음을 파헤치기 어려울 테지. 이로써 공식적으로 레이먼드 킹슬리는 사망했다. 마이더스도 사망자에게 채권을 묻진 못한다. 그러나 … 정말로 그것이 정말로 자유를 의미하나?


아니오. 당신은 이제 내 겁니다.


부드럽게 뒷목을 감싸면서 벤자민은 중얼거렸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레이먼드가 이제 경매가 벌어지던 별장보다 훨씬 작은 저택에서 평생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누구도 그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교육도, 외출도, 기타 인간다운 삶을 정의하는 모든 행위도 이제부터 허락되지 않는다. 손님은 적어도 1년이었지, 이 것은 기한이 없는 종신형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레이먼드는 오히려 청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기뻐요, 벤자민 ….


바로 그 점이 가장 사랑스러웠다. 


*


벤자민은 물론, 조직이 알고 있는 제 집에 레이먼드를 숨겨두는 짓은 하지 않았다. 존 도우는 눈이 예리한 사람이다. 약간의 틈도 그에게 빌미를 주게 될 거라는 걸, 벤자민은 잘 알았다. 위치 선정은 쉽지 않았다. 너무 가까우면 조직의 눈 닿기 십상이고, 너무 멀면 찾아가는 것이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웠다. 아주 어렵게 결정한 곳이 LA 근교의 작은 마을이었다. 해안과 가깝지만, 벼랑이라 관광객들은 없는 작은 저택. 종종 그곳을 생각하면서 벤자민은 탑을 연상했다.


라푼젤의 동화가 어울리는 대목이다. 레이먼드는 그 탑 위에서 하염없이 벤자민을 기다렸다. 출입을 강제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순종적으로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남아서는. 동화와 다른 점이라면 벤자민이 공주를 구출하는 왕자나 기사 따위보다는 마녀에 가깝다는 점 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인가, 레이먼드는 벤자민이 괴물이었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이미 괴물이지만.


여느 때처럼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벤자민은 타겟의 이 사이에 칼날을 물린 뒤 돌려 세워서 억지로 입을 벌렸다. 타겟의 목 안쪽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심드렁하게 흘려넘긴다. 대꾸하거나 받아줄 심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탑에 가지 못한지 일주일 째다. 조직에서 벤자민의 입지가 커져갈수록 맡기는 일도 자연스레 많아졌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점점 더 버거워졌던 것이다. 억지로 벌어진 입 안에 명령받은 것을 잔뜩 쏟아붇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턱을 붙든 채로 시간을 센다. 지시받은 시간을 다 채웠을 쯤에는 더 이상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할 일을 마친 채로, 벤자민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남은 타겟은 둘, 전부 완수할 때까진 사나흘이 더 걸릴 것이다. 탑을 찾아가는 날짜도 그만큼 뒤로 밀린다는 뜻이다. 착수한 임무가 있는 상황에서 전혀 관련없는 지역을 방문하는 행동은 누군가에겐 단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벤자민은 그런 것을 뒤에 흘리는 것에 취미가 없었다.


거실에는 여전히 TV가 켜진 채였다. 흔적을 지우면서 TV도 끌까, 생각하던 귀에 뉴스 소리가 박혔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26주기를 맞아 … 그건 벤자민이 업무 외적으로 유일하게 알고 있는 감독의 이름이었다. 레이먼드가 여러번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히치콕 감독의 환생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


꿈꾸듯 중얼거리던 목소리. 연쇄반응처럼 벤자민은 오늘 날짜를 기억해냈다. 4월 29일. 레이먼드 킹슬리의 생일이었다.



자정을 넘기기 직전, 벤자민은 아슬아슬하게 탑에 도착했다. 쾅, 숨고를 틈 없이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하필이면 비가 와서 입고 있는 옷이고 급하게 사온 선물이고 전부 비에 젖은 상태였는데, 그런 것 하나 아랑곳하지도 않고, 현관을 넘기도 전 마찬가지로 숨막히게 뛰어와 품에 안기는 온기가 있다.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보고싶었다고 애원하는 등을 끌어안으면서 벤자민은 이마에 젖은 입술을 문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레이먼드. 그 말을 하기 위해 벤자민이 얼마나 많은 규칙을 어겼는지. 어린 님프는 알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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